나태주 시인의 죽은 시인들 나라-14

지난겨울은 추웠습니다. 추워도 아주 많이 추웠습니다. 우리 집만 추웠던 게 아니라 한반도 사람들 모두가 추웠을 것입니다. 오돌오돌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아니 견뎠을 것입니다. 혹독하다는 말의 느낌이 가장 잘 드러난 겨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갈수록 겨울이 추워진다니 걱정은 걱정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특히 없이 사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걱정입니다. 그 삶이 무한히 불편해지고 제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사람, 나이 든 사람들의 겨울이 힘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면역력이 약한 그들에게 감기차례라도 온다면 곤히 쉽게 넘어가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부터 지난 가을 독감 예방주사, 폐렴 예방주사까지 서둘러 골고루 맞았지만 기어코 감기란 불청객이 찾아오는 바람에 눈의 흰자위의 혈관이 터지고, 코가 헐고, 편도선이 붓고, 드디어 귀에 중이염까지 생겨 그야말로 이목구비 모두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를 두루 찾았지만 아직도 병원 출입을 졸업하지 못한 처지입니다.

아, 힘든 겨울이여. 무섭기까지 한 찬 바람이여. 미끄러운 빙판길이여. 봄이 오는가, 오는가 바라보느니 먼 산이요, 햇빛입니다. 아무리 겨울이 모질어도 봄은 또 이 땅을 찾아오게 오게 마련!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법칙입니다.

허지만 봄은 해마다 그대로 순하게 공짜로 오지 않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에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큰일이 꽈당! 터지곤 했습니다. 부디 올해는 봄이 순하게 예쁘게 아기처럼 새악씨처럼 우리들 곁을 다녀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봄의 길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는 아무래도 이성부 시인의 「봄」입니다. 이성부 시인은 광주 출신으로 시인 출발부터 매우 건강하면서 남성적인 시를 썼던 시인입니다. 대학생 시절 이미 시인으로 이름을 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매우 조숙한 시인입니다. 뿐더러 그의 시는 매우 남성적인 목소리를 담은 시여서 등단 초기부터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거친 역사와 현실의 격랑을 헤쳐가면서도 시인은 시적인 평형을 잘 유지한 시인으로도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의 시는 언제나 예술성과 현실성을 고르게 안배하여 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뿐더러 불필요한 난해성이나 까다로운 실험성에도 함부로 몸을 담근 일도 없어 언제나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말년엔 건강 회복을 위한 방편으로 혼자서 산을 찾아다니며 명상적인 시편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시들은 주로 『도둑산길』(2010, 책 만드는 집)이란 시집에 실려 있는데 ‘산과 시인이 교감하고 말하고 깨우치고 담담하게 세상을 내려다보았다는 점에서 전과는 달리 더 미시적이고 관심의 폭이 넓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1942년 광주 출생으로 광주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학생 시절 <현대문학>에 작품이 추천되었으며(1961∼1962), 1966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신문사 기자생활을 했으며, 시집으로는 『이성부 시집』『우리들의 양식』『백제행』『전야』『빈산 뒤에 두고』『저 바위도 입을 열어』『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지리산』『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오늘의 양식』『도둑산길』 등을 간행하였습니다. 받은 상으로는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이 있습니다.

지금도 나는 이성부 시인의 시 「봄」을 읽으면 가슴이 뜁니다. 어디쯤 분명 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것만 같아 까치발을 딛게 되고 먼눈을 뜨게 됩니다. 봄아, 어서 오너라. 손을 들어 봄을 맞이하고 싶어집니다.

시인의 다른 시편에서 그렇듯이 이 시도 매우 현실감각이 있으면서도 건강한 삶의 목소리가 배어 있습니다. 여타 현실참여 시인들의 시에서처럼 사시로 비틀리거나 까탈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범상하면서도 깊은 내면의 울림을 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오래까지 가는 감동이겠습니다. 이런 시가 바로 명시이고, 우리에게 유익하고 좋은 시입니다. 몸에 좋고 마음에 좋은 시입니다.

힘찬 봄의 고동. 그 발자국 소리. 헌걸찬 목소리. 아무것에도 거침없으면서 다정한 손길. 꼬질꼬질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트인 사람이라면 시를 읽어가면서 대번에 아, 그렇구나! 알고도 남을 일입니다. 시를 통해 인생의 환희, 봄의 실감을 갖게 된다면 그것도 아주 귀한 경험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일요일, 큰맘 먹고 자전거를 타고 일락산 해지개샘물로 물을 뜨러 갔었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날카롭게 파고들지만 햇빛이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 바르르 떨리는 느낌이 있고 그 빛깔이 조금은 노랑 빛이 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무들의 몸통의 빛깔이 달라지고 꽃몽오리가 좀 더 자란 것처럼 보였습니다.

봄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가장 잘 아는 것들은 아무래도 나무들과 땅 속에 씨앗들이고 또 벌레들이고 개구리나 뱀과 같은 동물들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이런 봄의 길목에서 나도 떨리는 가슴을 회복하면서 새롭게 살아갈 1년을 위해 발돋움 해봅니다. 이런 마음이야 나 말고도 모두가 다 같을 것이라고 봅니다. 새봄에 모두의 행운을 빕니다.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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