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죽은 시인들 나라-9

윤동주 시인은 참으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시인입니다. 영원한 청춘의 표상 같은 시인이요 순절의 시인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치고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 시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인은 김소월 시인과 더불어 최대의 국민시인입니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지 백성으로 36년 치욕을 겪었으면서 윤동주 같은 시인 한 사람마저 갖지 못했다면 우리의 민족사는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민족 해방을 몇 해 앞둔 1943년 7월, 일본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 학생으로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준비를 하다가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일본 특고경찰에 체포되어 치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후쿠호카형무소에서 해방 직전 해인 1944년 2월 6일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고 큰소리를 외친 뒤 돌아갔으니 그 누구보다도 애국시인입니다.

윤동주 시인이야말로 아무리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시인이고, 죽지 않는 시인입니다. 젊은 시절엔 젊은 시절대로 좋아지는 시인이고, 나이 들면서는 또 나이 든 대로 좋아지는 시인입니다.

우리는 윤동주 시인에게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읽습니다. 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런 감회를 갖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윤동주 시인에게서 자신이 꿈꾸는 미래상을 보게 되겠지요.

2004년 8월이라고 기억되는 어느 날, 미국 엘에이에서 열린 해변문학제 초청연사로 가서 문학 강연 중에 윤동주 시인을 언급하면서 ‘윤동주 시인은 덜 된 시인이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참석한 한 독자로부터 호된 질책성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실은 윤동주 시인은 그 생애로 볼 때 청년기에 돌아갔으므로 인생으로서는 미완성을 산 ‘덜 된 시인’이란 뜻으로 한 말인데, 독자가 흥분하는 바람에 변명을 하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가 한국에 살든 외국에 나가 살든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만은 맹목에 가까운 순정과 친애감을 갖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윤동주 자신이 순정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윤동주 시인은 그 생애로 보아선 ‘덜 된 시인’입니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삶이 없었고, 더구나 할아버지의 삶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윤동주 시인에게서는 안쓰러움과 안타까움 같은 정서를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 윤동주! 그런 감격과 느낌표가 머무는 시인이 바로 윤동주 시인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훼손될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윤동주 시인입니다. 민족의 가장 아름다운 눈빛이 된 사람이 또 윤동주 시인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는 그의 시작품만큼이나 일반에게 잘 알려진 바가 있습니다. 1917년 만주의 북간도, 오늘날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명은 해환(海煥). 해처럼 빛나라는 뜻으로 그리 지었다고 합니다. 증조부 때부터 함경북도에서 이주했는데 일찍이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구자 집안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교회의 장로였고, 아버지는 명동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집안 내력과 분위기로 해서 윤동주는 고향에서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용정 은진중학교와 숭실중학교에서 공부하며 씩씩한 소년으로 성장합니다.

중학교 시절에 이미 정지용 시인의 시를 좋아해 교내 학생잡지를 스스로 만들며 동시를 썼고, 축구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웅변대회에 나가 1등으로 입상을 하기도 합니다. 매우 꿈 많은 소년이었다 할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시인으로서 꿈을 펼친 것은 서울로 올라가 연희전문에 들어가 최현배, 손진태, 이양하 교수 같은 분들이 강의를 들으면서부터입니다.

이 시절이야말로 청년 윤동주로서 비참한 민족 현실에 대해 개안을 하고 이에 합당한 자신의 시세계를 형성해나간 시기입니다.

이 때 윤동주 시인은 동시에서 성인시로 전향,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 제목으로 19편의 시를 필사해서 세 권의 책으로 만들어 한 권은 지도교수인 이양하 교수에게, 한 권은 함께 하숙하던 후배 정병욱에게 주고, 나머지 한 권은 자신이 보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양하 교수에게 맡긴 것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시집은 없어지고, 후배 정병욱에게 맡겨진 것만 유일하게 세상에 남아 광복이 된 다음, 역시 연희전문 시절 절친한 벗 강처중이란 사람이 보관하고 있던 원고와 합쳐져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으로 시집이 나오게 됩니다.

이 시집엔 시인이 문학 소년시절부터 좋아했던 정지용 시인의 서문이 붙게 되는데 이 시집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읽는 윤동주 시집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돌아간 것은 앞에서도 적은 바와 같이 민족 해방 한해 전인 1944년.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용운 선생도 광복 한 해 전에 세상을 떴는데 윤동주 시인 역시 그랬다니 그 어떤 숨은 뜻이 있는가 싶어 숙연해지는 바이기도 합니다.

장래가 양양한 젊은 아들이 이국땅에서 그것도 감옥에서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시신을 거두기 위해 찾아간 아버지(윤영석)과 당숙(윤영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윤동주 시인의 유해는 북간도로 돌아와 용정동산에 중앙장로교회 묘지에 안장되고 얼마 있다가 집안사람들의 주선에 의해 비석이 세워지는데 그 비석에는 ‘시인 윤동주지묘’라 새겨지게 됩니다.

오늘날 중국 여행길에 관광객들이 만나는 바로 그 비석입니다. 나 자신 두 번이나 연길과 백두산 여행길에 용정에 들렀음에도 윤동주 기념관만 보았을 뿐, 묘소와 비석을 찾아보지 못함이 하나의 섭섭함으로 남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전편이 모두 어렵지 않은 언어와 시 구조로 읽는 이에게 바로 이해되고 전달이 되는 작품들입니다.

시의 내용 또한 그럴 수 없이 맑고 순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반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물론 「서시」입니다.

자신의 삶의 자세와 인생 방향을 준엄하게 점검하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들어있는 소슬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서시」와 더불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별 해는 밤」입니다.

이 시는 서정시면서 서사(敍事)가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흐름이 유장하고 내용이 크고도 넓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생애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작품입니다.

비록 윤동주 시인이 20대 후반을 살고 죽었지만, 그 이상 아주 많은 생애를 산 사람의 안목이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시의 계절은 가을. 시인은 가을밤에 하늘의 별을 보면서 많은 상념에 잠깁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별입니다.

‘별 하나, 나 하나’ 입을 모아 세었던 별입니다. 그 별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마음이 새롭습니다.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세었던 별을 아직도 다 세지 못한 까닭을 여러 군데서 찾습니다. ‘내일’과 다하지 않은 ‘청춘’에 그 까닭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별 하나 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던 시인은 끝내 ‘어머니’에 가 말문을 멈춥니다. 그리고선 어머니에게 고백하듯이 별과 관계된 많은 속내들을 털어놓습니다.

많은 이름들이 따라 나옵니다. 지상에서 만났거나 들었던 가장 아름다운 이름들입니다. 그런 이름들을 외우며 시인은 잠시 행복해 합니다. 별과 어머니― 이는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드디어 시인은 자신이 좋아했던 모든 대상들이 멀리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면서 외로워지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또한 멀리 계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어머니가 ‘멀리 북간도에’ 에 계신 것으로 보아 시인은 아무래도 객지에 나와 있는 사람인가 봅니다. 당연히 여기서 진한 그리움이 나오겠지요. 이 그리움이 시인으로 하여금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자신의 ‘이름자’를 써 보게 합니다.

하지만 이름자를 써놓고서는 그것을 이내 ‘흙으로 덮어 버’리고 맙니다.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얼마나 윤동주 시인이 순결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고 고결한 인격을 지닌 염결성 있는 인물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서 만나는 것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고 염치를 차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부활을 꿈꿉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자신의 ‘이름자 묻힌 무덤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라는 예언이 그것입니다.

인간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삶의 흔적도 죽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들이 소스라쳐 놀랄만하고 순간순간 옷깃을 삼가 여밀 만큼 경건하고 엄숙한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이 시는 장강과 같이 기나긴 흐름과 호흡을 지닌 시입니다. 내 일찍이 ‘윤동주 시인은 덜 된 시인이다’이라 말했지만 결코 그런 말이 맞지 않음을 중명해주는 작품입니다.

삶과 죽음이 있고, 또 부활의 의지가 있는 시입니다. 유년이 있고 청년이 있고 끝없는 미래가 열려진 작품입니다. 윤동주. 그는 죽어서,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어서, 민족의 별이 되고 만 시인입니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꽃으로 남겨진 시인입니다.

이제 저미 않아 가을이 올 것입니다. 벌레들 우는 가을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숲길을 걸으며 윤동주 시인이 우러러보았던 수많은 별들을 눈이 시도록 바라볼 일입니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을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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