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기자의 포토 플러스(+) 이야기

▲ 1982년 고3때 춘계체육대회 퍼레이드 직후 찍은 사진. 옆에 양복을 입은 친구는 지금 농협 공주시지부에 근무하고 있는 배양환 팀장이다.
▲ 기자의 고2때 모습. 당시는 키가 작은 학생부터 키가 큰 학생의 순서로 번호를 정했으나, 기자는 키가 크기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짤릴 지 모르니 맨 끝에 두는 것이 나중에 출석부 정리에 편하다'는 이유로 맨 끝 번호였다. 그래서 자리도 맨 끝자리를 차지했다. 그것도 깨진 유리창 옆에 있는.

바른 말(남이 봤을 때), 쓴 소리(당사자)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어떨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경험상으로 볼 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한다. 바른 말을 사람은 권력을 가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정작 ‘쓴 소리’를 ‘바른 소리’로 정당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기자가 고3때였던 1982년. 관악부에서는 오후 수업을 빼고 충남 관악 콩클 대비 연습에 들어갔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가서 따졌다.

“우리는 대학진학에 뜻을 두어서 인문계로 진학했는데, 오후 수업을 다 빼고 연습만 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느냐?”고.

그리고 “원하는 학생들, 음대에 진학할 학생들만 수업을 빼 달라”고.

물론 1~2학년 때에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선배들이 두려워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3학년이 된 만큼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은 침묵했다. 그런 침묵을 이해했다.

그리고 1학년 신입생 가운데 친구 동생이나, 아는 후배들이 오면 관악부에서 내쫓았다. 기자가 관악부 생활을 해 보니 별로 권장할만한 곳이 못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쁜 경험을 후배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휴유증은 컸다. 먼저 선생님께 죄송했다. 학생이 교사에게 따졌으니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셨을까? 더구나, 관악부원 모집하기가 무척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찾아 온 학생들을 내쫓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다. 관악특기생으로 입학한 이들은 기자가 관악부에 스스로 들어온다는 후배들을 내쫓았다는 사실을 선생님께 고자질했다. 참으로 난처했다.

2005년 10월 7일 백제문화제 행사에서 ‘심대평 도지사, 정진석 국회의원에게 축사를 시켰다’는 이유로 윤완중 전 공주시장이 당시 이상래 공주부시장의 멱살을 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디트뉴스24에 근무하고 있던 기자는 이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자마자 자칭 메이저 신문사 소속이라고 생각하는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함께 보도하자”고 권유했다. 특종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다.

이같은 권유에 화답한 언론사는 연합뉴스였다. 당시 연합뉴스 임준재 부장이 기자의 보도이후 3일 만에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이후 KBS에서도 보도했다.

이와 관련된 보도를 일주일 동안 계속한 이후 기자는 한동안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 때 공무원들을 다시 보게 됐다. 자신들의 맏형격인 부시장이 멱살을 잡힌 사실을 보도해 기자가 시련을 겪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무원들은 시장의 눈치를 보느라 기자의 시선을 피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시장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서운했다. 기자는 그 기사에 대한 최고의 수혜자는 지금의 이준원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기자가 소속돼 있는 특급뉴스가 이준원 시장으로부터 가장 미움을 받는 언론이 돼 있다. 관사문제, 관용차 문제, 관사전기료 문제, 관사비품문제, 터미널 문제, 탄천 지정폐기물처리장 문제, 금강 돌보문제, 세종시문제 등을 계속 지적했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사에서 정도를 지켜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철저히 하면 어떻게 될까?

권력은 당연히 반발한다. 그리고 해당언론에 대한 경제적인 불이익을 행사한다. 시민들은 비판기사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해당 언론사를 돕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 그러나 이런 그들의 잘난(?)믿음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같은.  

‘바른 말은 곧 시련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진작 알았으면서도 똑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이 어리석음, 그 성질머리. 그래도 ‘쓴 소리’를 달게 받는 지도자가 있는 세상에서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물론 희망사항이다.

 

▲ 1982년 당시 공주고 관악부 퍼레이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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