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를 겸비한 함안 윤씨의 공주 입향조

 

공주시(시장 최원철)는 조선 후기 뛰어난 무신이자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공을 세우고 공주를 고향으로 삼은 함안윤씨의 공주 입향조 인물인 충민공 윤각 선생을 10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선생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여성(汝誠)으로 1697년(숙종 23) 형인 윤원과 함께 공주 요당(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공주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선생은 이후 길주목사, 삼도구순통제사, 총융사, 한성부좌윤, 병조참판 등 지방직과 중앙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선생은 군의 기강을 확립, 국방을 튼튼히 하는데 노력했으며 무관이었지만 책을 가까이하고 사려가 깊어 백성들을 대함에 있어 공정하여 많은 백성들이 선생을 따랐다고 전해진다.

특히 1712년(숙종 38)에는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백두산 남쪽 산천의 형태를 정확하게 조사해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큰 기여를 했는데 이를 통해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확립하게 되었다.

선생은 1721 ~ 1722년에 걸쳐 일어난 신임사회(辛壬士禍)* 때 역모지원금을 지원하였다는 무고로 인해 유배형과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복(自服)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 후유증으로 인해 1724년(경종 4) 6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 신임사화 : 노론과 소론이 연잉군(延礽君, 후의 영조)의 왕세제 책봉문제로 인해 충돌한 사건으로 많은 노론이 소론에 의해 숙청당하였음.

그러나 영조 즉위 후 신임사화를 소론 측의 무고라고 판정한 1725년(영조 1)의 을사처분(乙巳處分)으로 인해 선생은 관작이 회복되었으며 병조판서를 증직받았다.

1783년(정조 7)에는 조정으로부터 충민(忠愍)의 시호를 하사받았으며, 1805년(순조 5)에는 부조묘(不祧廟)인 충민사(忠愍祠)를 건립하게 되었다.

부조묘는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으로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충민사는 윤각 선생을 모신 부조묘(不祧廟) 사당으로 1805년(순조 5) 조정으로부터 불천지위(不遷之位)를 하사받아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종유사(宗儒祠)라고 불렸으나, 2009년 중건하면서 충민사로 개명하였다.

1824년(순조 24)에는 의당면 월곡리에 있던 요당서사(蓼塘書社)에 배향되었다.

현재 의당면 월곡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선생의 행적과 관련된 충민사와 부인 광주김씨를 기리는 정려 등이 남아 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병철 문화재과장은 “문무를 겸비한 조선후기의 뛰어난 무신이자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공을 세운 충민공 윤각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10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 10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윤각 선생 관련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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