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뉴스 김광섭 기자의 칼럼

(구)공주극장(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된다는 발표에 공주시민들이 크게 반발, 논란이 뜨겁다.

공주시는 지난 25일 중학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일환으로 추진되는 마을어울림 플랫폼 조성에 따라 철거를 앞둔 (구)공주극장(아카데미극장)에 대한 이별식을 거행했다.

근대 공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가 숨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아있는 역사가 무참히 사라지는 것이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김정섭 시장은 1910년 09월 05일 ‘관립 공주자혜의원’으로 설립된 공주의료원도 ‘구 공주의료원 활용을 위한 시민참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공주목관아를 재현하겠다”며 구 공주의료원 건축물을 철거했다.

구 공주의료원 활용을 위한 시민참여위원회가 공주의료원의 활용 방법을 논하지 않고 철거를 권고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또한 죽은 역사(공주목)의 재현을 위해 살아 있는 역사(공주의료원)를 위원회의 권고를 명분으로 철거한 ‘문화시장(?)’의 용기(?)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디 전 오시덕 시장이 “공주의료원을 활용 하겠다”고 하니 추종자들을 내세워 명분을 만들고, 철거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공주는 역사의 도시이지만, 실물로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런 와중에 (구) 공주아카데미극장은 근대의 역사를, 공주시민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구) 공주극장은 기자의 친구 동생이 매표소에서 근무했었으며 오징어와 땅콩, 톱밥 난로, 동시상영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이복남 전 수원대 교수가 2017년 웅진문화 제30집에 기고한 ‘공주 원도심 극장의 변천’에 따르면 공주 부호 김갑순은 1913년 11월 본정(현 중동) 147 번지, 상설시장에 금강관을 건립했다.

금강관은 1931년 2월 큰 화재로 전소(全燒)됐고, 1932년 1월 화재 후 김갑순은 금강관을 신축하고, 극장명을 ‘공주극장’으로 개명했다.

이후 1943년 6월 7일 지금의 자리에 (구)공주극장(아카데미극장)이 신축됐고, 후에 ‘공주극장’은 ‘아카데미극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기자는 2010년 ‘가설극장, 호서극장의 추억에 잠기다’라는 기사를 썼고, 기사를 쓴 후 얼마쯤 지나서 KBS PD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전국적으로 옛날 극장이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는데, 정말 공주에 아직도 옛날 극장이 남아있느냐?”는 것이었다.

기자는 “공주에는 두 개나 남아있다”라고 답했고, 극장 관련 문의를 할 수 있는 곳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이처럼 귀한 극장을 공주시가 철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역사를 사랑하는(?) 공주시장에게 묻고 싶다.

“D등급이라서 철거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기자가 알아본 바로는 비용이 더 들기는 하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공무원을 평가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이다. 일하려고 하는 공무원은 방법을 찾고,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는 것.

김정섭 시장은 시립미술관의 공약을 위해 공주가 충청의 수부 도시였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모여 있는 충남역사박물관의 논산 이전까지도 슬그머니 거론했다가 여론에 떠밀려 접은 적이 있다.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100년이 필요하지만, 100년의 역사를 부수는 것은 한순간이다.

공주는 그동안 선교사 가옥, 제일은행, 공주의료원 등 근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몸체를 잃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비극의 역사는 없어야 한다. 마을 플랫폼사업은 다른 곳에 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구 공주극장은 단 하나뿐이다.

구 공주극장의 철거는 역사의 도시인 공주에 오명을 남기는 일이며, ‘역사 도시’에 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이달 말이면 김정섭 시장의 업무가 정지될 것이니만큼 이 문제는 김정섭 시장이 최소한 ‘보류’ 지시는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잠시 업무 대행을 할 부시장이 이 일과 관련해 어떤 새로운 결정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를 불과 2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구)공주극장의 철거가 시작된다면, 이에 대한 부담도 모두 김정섭 시장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카오에 있는 성바오로 성당은 벽체밖에 남아있지 않고, 벽체 뒤에 빔으로 등을 기대고 있으면서도 세계유산에 등재돼 전 세계인들이 찾고 있다. 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김정섭 공주시장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관련기사 있음)

성 바오로성당 앞면
성 바오로성당 앞면

 

성 바오로성당 뒷면
성 바오로성당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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