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성들, '관습'과 '고정관념' 정면 돌파


그린투어리즘연구회 사무국장(사진 중앙)이 아지무마찌 마을이 농촌민박을 통해 활기있는 마을로 변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특급뉴스 김광섭


현재 일본의 농민도 한국의 농민과 마찬가지로 시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일본정부에서는 남는 쌀의 수급을 조절하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쌀 재배면적을 해마다 점점 줄여서 할당하고 있고, 논에 콩이나 사료작물을 심도록 하는 등 쌀 감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농자재, 비료, 농약 등 농업관련제품이 계속 인상되고 있어 농민들은 “내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농업관련 회사의 이익을 위해 농사를 짓고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팍팍 내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90세가 된 노인도 농사를 짓고 있을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 지역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지무마찌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더 심했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 농사만 짓는 집으로는 시집오기를 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농촌의 답답한 현실을 직시하고 몇몇 뜻 있는 지역의 인사들이 ‘비상탈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더 이상 이곳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침체된 마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1998년 10월 ‘아지무마찌 그린투어리즘 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농가가 농산물의 생산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의식개혁을 통한 농업, 농촌, 농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1992년 농가중심으로 8명의 ‘어그리투어리즘연구회’를 조직해 스터디를 계속했다.

그러나 1996년 이들은 몇몇 농가만으로는 그린투어리즘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농촌미래의 발전을 위해서는 마을전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아래 참여인원을 30명으로 늘렸다. 명칭도 ‘아지무마찌 그린투어리즘연구회’로 변경했다.

그리고 도시와의 교류에 의해 기본산업인 농업을 지키면서도 발상을 전환, 지역경제 활성화 및 주민상호 상생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아지무마찌 그린투어리즘 법인을 설립하고, 1998년 10월 ‘아지무마찌 그린투어리즘(이하 GT) 추진협의회’를 결성했다.

GT는 ▲농업, 관광을 포함한 산업, 복지, 문화, 교육, 경관 등을 종합적으로 실천해 농촌전체의 활성화와 자립을 목표로 한다 ▲도시와 농촌의 대등한 교류로 공생의 길을 찾는다 ▲갇혀있는 농촌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내고 농촌여성의 지위향상과 자립을 지향한다 ▲다음세대를 짊어질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고 농촌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게 한다. ▲마음의 치유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신적으로 경제적 효과와 농촌 아지무마찌의 가치를 높인다는 이념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이 시들어 가는 농촌을 활기 넘치는 마을로 바꾸기 위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선진지 견학이었다. 이들은 농촌민박을 하고 있는 독일의 농촌을 견학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인다운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

일본에는 농촌민박을 하고 있는 지역이 없어 선진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진지로 선택한 독일의 농촌지역이 인구나, 구성 등이 아지무마찌 지역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자의 부담으로 가야 하는 만큼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5년에 1회씩 가기로 하고, 항공료를 줄이기 위해 여행성수기를 피해 비수기를 이용했다. 또한 15명당 1명씩 주어지는 무료여행특전도 적극 활용했다. 그런데도 보조금 받아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사전에 각자가 역할을 분담해 선진독일농촌마을의 정관, 민박을 위한 시설, 환경, 식사 등 제반 현황을 꼼꼼히 살폈다.

이들이 독일의 농촌마을에서 만난 것은 매우 아름답고, 활기찬 느낌과 ‘고정관념의 탈피’였다. 흔히 숙박은 호텔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독일의 농촌에서는 민박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포도 막 위에서 자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아침식사도 커피와 빵 정도로 가볍게 제공하고, 자기들은 일터로 일하러 가는 것이었다. 이 지역 농민들은 ‘방치’하는 수준의 민박서비스를 제공해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 연수를 가슴에 그대로 담아 왔고, 이 연수경험을 토대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작업에 착수했다. GT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연수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독일식 민박을 아지무마찌 지역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남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하지도, 받기도 싫어하는 일본식 사고방식이 문제가 됐다.

교직에서 정년을 마친 GT연구회 사무국장도 현직 교사시절 가정방문 중에 화장실이 급해도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일 경우 학부모가 난감해 할 것을 우려해서 학부모에게 “화장실을 이용해도 되느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노인들은 남을 집에 들이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에게 돈을 받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이러한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또한 이 지역은 시골이라서 이렇다 할 식당이 없어 저녁을 먹지 않고 오는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들은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끝에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관습’은 깨고, 식사는 직접 제공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지역 현실에 맞는 민박을 실시하기로 했다. 돈 때문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 그대로를 활용하고, 농한기를 이용, 1~2팀씩 민박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런 일에 앞장은 선 것은 이 지역의 용감한(?) 여성들이었다.

민박손님에게 저녁상을 차려주어야 하는 것도, 침구를 깔아 주고 제공하는 것도, 시아버지의 불만을 누그려 뜨려 집안을 화목하게 해야 하는 것도 여성들의 몫이었다. 이 지역의 여성들은 잘 사는 남의 발목을 잡지 않고 “함께 노력하자”며 격려했다. 

이런 여성들의 노력덕분에 이 지역에서 민박한 손님들은 도시에서 맛보지 못한 푸근한 정을 느끼며 기뻐했다. 또한 노인들도 자기 집을 찾은 젊은이들에게서 ‘손자효과’를 맛보고 즐거워했다.

이들은 숙박료를 저렴하게 받고 자신들이 직접 지은 농산물을 손님 차의 트렁크가 닫히지 않을 정도로 안겨줬다. 그 결과 도시민들은 대 만족,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취재가 줄을 이었다.

그 결과 지금은 일본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 됐고, 조용하고 침체된 시골마을은 활기차고 생기 넘치는 마을로 탈바꿈 했다.

그러나 이렇게 유명세를 타 손님들이 늘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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