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주 명예교수(공주대학교)의 칼럼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공주 우금티에서 1894년 11월 8〜9일(음력)에 있었던 동학농민군이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가 있은 지 125여년만인 2019년에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하면서 법정기념일이 된지 2년이 됐다.

공주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법으로 규정되기 이전에도 민간단체인 사)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1987년 11월 처음 추모제를 올리기 시작한 후,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이 되던 1994년부터 기념식을 개최해 왔다.

이와 같이 동학농민혁명 희생자 추모제나 기념식이 오랫동안 민간단체에서 주관하여 왔는데, 올 해의 기념식은 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기념일에 공식적으로 공주시장이 기념사를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길놀이, 국민의례, 동학농민혁명 기념 시낭송과 진혼 공연에 이어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공주시장, 그리고 유족대표의 기념사가 있은 후 참석자들이 모두 함께 ‘동학혁명의 노래’를 부르고 헌화를 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기념식 내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126년 전 겨울 우금티 전투에서 희생된 동학농민들이 1만여명이나 되었다는 비통함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 하나로 뭉쳐 불운했던 시대에 일제(日帝)를 몰아내고, 보국안민(輔國安民)과 평등사회를 지향했던 순수한 농민들의 개혁운동이 너무 오래 국가‧사회적인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점 등의 사실이 참석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공주시민포럼이 있었던 지난 10일에도 주제가 동학농민혁명이었다. 1894년 5월 11일 전북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무찌르고 첫 승리를 거두고, 서울까지 북상하려던 계획이 그 해 초겨울 엄청난 생명들이 희생당하면서 종식된 전적지가 바로 공주 우금티였다는 점에서 공주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가장 초점이 되는 지역특성이 있다고 포럼참가자들이 공감했다.

그런 한편으로 100년이나 훨씬 지나도록 우금티전투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공식적인 진혼 및 위안 의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우금티 농민혁명에 관한 용어조차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그 역사적 의의 또한 공주시민과 단체들의 인식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과 우금티 동학혁명군위령탑 뒤의 감사문에는 ‘우금치(牛金峙)’라고 하고 있고, 다음 사전에는 ‘우금치(牛禁峙)’, 공주시청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서는 ‘우금치’와 ‘우금티’가 혼용되고 있으며, 공주시청에서 정한 도로명과 법이 규정한 기념일 명칭은 ‘우금티’라고 정하고 있다.

전투의 주체도 ‘동학혁명군’, ‘동학농민군’ 등 다양하다. 이제는 하나로 용어를 통일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역사적 의의도 누구나 함께 공감하여 기려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5월 11일의 기념식과 11월에 거행하는 위령제는 그동안 애써 온 특정 시민과 단체 중심으로 개최할 것이 아니라, 공주시장이 주관하여 종교, 정치이념, 시대‧사회를 보는 시각을 달리하는 모든 시민 사회단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우금티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과거사를 극복하고 우리 공주 시민들이 하나로 단합하는 성스러운 유적지로 조성해 나아가자는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공주는 1892년 10월 전국 최초로 억울하게 처형된 동학 최제우교조(敎祖)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줄 것을 요구한 지역이다.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선생이 마곡사의 가섭암에서 동학교리를 가르쳤다고도 한다.

이 정도만 보더라도 공주는 동학혁명의 발상지요, 우금티 전투로 순절(殉節)한 영령들의 동학정신을 계승, 승화시켜 공주의 지역 가치와 시민정신을 한데 모으는데 손색(遜色)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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