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주 공주대 명예교수의 칼럼

엊그제 우리는 101주년을 맞이하는 삼일절을 보냈다. 일 년 중 그 어느 날 보다도 경건하게 보내야 할 날인데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여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기념식도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50명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하니 참으로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주에서도 김정섭 시장과 박병수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광복회, 기미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대표자 등 소수 인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3.1운동 기념탑에 헌화하고 ‘공주의 독립운동사’ 책을 헌정하였다. 또한 김정섭공주시장과 이창선 부의장은 3.1중앙공원의 유관순 열사상에 헌화하고 숭고한 순국정신을 추모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공주문화원에서는 공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었던 작년 말에 ‘공주의 인물- 독립운동가편’ 책을 발간하였다.

이와 같이 공주에서 삼일절 101주년이 유달리 특별한 것은 1919년 3월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공주가 다른 지방에 비해 일찍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금년은 영명학원을 모교로 한 유관순 열사의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101년 전 공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불과 2개월에 전체 인구의 약 10% 정도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울 일이며, 공주에서는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강했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대단히 크다.

그 한 예로 1894년 11월 9일부터 11일 사이에 공주 우금티에서 있었던 동학농민군과 일본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 당시 우금티 전투뿐만 아니라 이인, 효포에서도 처절한 전투가 있었다.

이보다 10년 앞선 1884년 10월에는 동학 2대교주인 최시형(崔時亨)선생이 공주 사곡면 마곡사 근처의 가섭사(현, 가섭암)에서 손병희, 박인호, 송보여 등 동학의 젊은 지도자들과 49일간 수련하였다고도 하고, 1891년 2월부터 5월까지는 공주 신평리(사곡면 신영리)에서 체류하면서 동학의 중요한 교리들을 정립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보면 공주가 근대 개화기와 일제 초기에 충청남도 행정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일찍 들어와 있어 항일운동이 강하게 일어난 점도 있지만, 그 보다는 당시 공주사람들의 민족의식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동학 지도자들과의 관련성도 깊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독립만세운동 101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공주의 후예(後裔)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까?

무엇보다도 공주에 있는 대표적인 항일 유적을 잘 보존하고 선열들의 극일정신을 현창(顯彰)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는 5월 우금티 전적 방문자 센터(필자는 ‘참배객 안내 센터’로 변경 필요가 있다고 봄)를 건립할 때나 또는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개최하는 우금티 추모제 때 정치, 종교, 시민?교원?지역단체 등 등 모든 이념이나 신념의 차이를 뛰어 넘어 오로지 우금티에서 일본군에게 희생당한 동학농민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후예들의 화해만을 위한 진혼제를 올릴 것을 제안한다. 우금티를 우리 공주 시민들의 대 화합의 장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가 공주에 들어왔을 때 처음 신사(神社)를 세우고, 그 곳을 사쿠라야마(벚꽃동산), ‘앵산(櫻山)공원’이라고 불렀던 영명중고등학교 정문 앞 공원이 있는데, 지금은 그 곳을 ‘3.1중앙공원’이라고 제대로 고쳐 부르고 있으니 그 공원에 ‘공주평화의소녀상건립시민추진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녀상을 세워 일제의 신사가 있었던 과거 치욕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극일의 시대를 새롭게 열어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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