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윤여관 시민기자

우금티는 112년전 민본과 민생의 국시가 흔들려서 생존이 어려워지고 인륜이 무너질 때 이를 바로 세우고자 일어섰던 민초들이 끝내 넘지 못한 고개입니다.

일부 언론의 기획이었다는 뒷말도 있었지만 이번 우금티예술제 중 유족의 밤 행사에는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의 증손녀인 전 청와대 홍보수석 조기숙씨가 동학농민혁명참여자 유족들에게 조상의 잘못을 사죄하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병갑이 그 조병갑 하나였을까?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조병갑이 하나뿐이었다면 동학농민혁명 이전 백년 가까이 어찌 그리도 많은 민란이 있을 수 있었고 1894년 불과 수개월 만에 전국으로 혁명의 불길이 번질 수 있었을까?

난이라는 것이 저와 저에 딸린 목숨을 걸어 놓고 하는 것이지 결코 장난삼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진댄 쌓이고 맺힌 것이 많지 않고서는 선동한다고 쉽게 동하는 것은 아닐텐데...

1894년 언저리의 시대상황이란 것은 - 민을 제대로 살게 하지 못하고, 민이 국의 근본임을 무시하면 종묘와 사직도 문을 닫아야 한다는 - 조선의 건국이념 ‘민본사상’이 형해화 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 뜻있는 선비와 유생들은 심지어 자결로서 상소하기도 하였고 초야에 묻히기도, 후학을 기르는데 뜻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시대에 대한 처절한 성찰을 바탕으로 선정을 펼치던 목민관은 매우 드물었고, 벼슬아치들의 대부분은 습관화된 관료의식으로 군림하던, 정도의 차이조차 미미한 어쩌면 조병갑ⁿ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역사에 이름이 기록된 조병갑은 전봉준이라는 시대적 인물의 출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기록과 기억의 멍에를 몰아 쓴 것 아닐까요?
 
기록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에 매몰돼서 기록의 목적과 교훈을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조병갑 하나를 희생양 삼아 민생을 위해 조직된 관료의 임무를 져버리고 관료주의로 고착시킨 당대권력 전체에 면죄부를 주는 우는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권력이 어디에서 나와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로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항상 현재진행형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울러 이번 조기숙씨 이벤트처럼 역사의 책임을 혈족주의차원으로 환원할 경우 이는 또 다른 위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하면서 피해당사자간의 갈등과 갖가지 저항들을 볼 때, 권력 그것도 국가권력이 저지른 일이 4대가 지난 혈족 사이의 감정문제로 떠넘겨지는 것을 당연시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철학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역사바로세우기와 과거사 청산은 감정당사자간의 싸움만 부채질한 채 선언으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라면 우금티에서 그 고개를 넘지 못한 수십만 동학농민군의 혼령 앞에 먼저 절을 했을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조병갑의 증손녀가 청와대 홍보수석이라고 밝혀놨고 역사적 책임의식을 표현해야할 위치에 있는 조기숙씨는 참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풀이의 과정과 방향에는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1894동학농민혁명을 현재화하기 위한 ‘우금티 선언’의 진행과정에 대한 것은 이 지면에서는 따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윤여관 (011-451-3361)


민본주의나 역성혁명론같은 주장도 사실은 소학의 체득 위에서만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금티에 뿌려진 수많은 피가 진정 님들이 열고자 했던 세상의 씨알로 피어나려면 우금티에 반드시 묻고 넘어가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참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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