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용 시민기자칼럼

중국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밤새 불편한 심사를 달래려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뱃속에 부어 넣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다.

마냥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쓰린 속을 안고 호텔식당에 가니 그래도 우리 팀들이 밤새 술을 마셨음 에도 불구하고 맨 먼저 나와서 조식을 하고 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지하게 부지런하다. 다소 입맛이 안 맞아도 맛있게 식사를 하고 기대를 안고 행사장을 향했다.

시내전역에 현수막이며 어제 공항에서부터 시내에 들어오는 동안에 선전물이란 선전물은 온통 뮤직메세 광고뿐 이었다.

세계 속에 전자 정보와 같은 현대화된 인프라를 구축 하려는 중국 의 의지와 이번 행사에 거는 중국 내의 기업들의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니 “2005 상해 뮤직메세” 라는 대형 간판이 걸려있는 거대한 행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외부 행사장 사방에 스피커를 라인 어레이 시켜서 공연하는 많은 밴드 팀이 눈에 띈다. 하지만 우선 참여한 악기 업체들을 보고픈 마음에 내부 행사장에 들어갔다.

5개의 메인 홀에는 참여한 중국 업체에서 생산된 많은 악기들로 꽉 차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참가 했는데 우리나라는 20개 악기 및 음향기기 업체가 참여했다.

각 부스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오퍼상들과 계약 하려는 상담이 줄 서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했던 악기 음향기기 국제박람회(2005koba show)를 한참 능가하는 규모 이며, 외국인들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쿠스틱(Acoustic)악기 업체를 돌아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중국 현지 업체의 기술 자문 중역들이 모두 한국 사람이며, 내가 알던 분 들이 아닌가?

중국과 합작 또는 중국 현지 업체에 고용된 우리나라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초일류 기술자들이고, 내가 모시던 상사도 그곳에 있었다.

그들도 나를 알아보고 눈물을 글썽 일 정도로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은 IMF때 나이가 많다고, 또는 월급을 많이 탄다고 회사의 경영 때문에 평생의 생업의 터전으로 알고 있었던 회사에서 타의로 밀려났다.

그렇게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술자를 천대할 때 중국의 기업인들은 합작 또는 고액의 연봉으로 모셔간 것 이었으며, 어느 분은 현지 기업체의 배려로 공관으로 한국에 있는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산다고 말 한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한국으로 들어갈 마음이 없다고 한다. 대우 좋은 중국에서 남겠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악기를 살펴본 바를 이야기 하자면 금속악기는 우리기술의 지도로 이미 우리나라 수준을 넘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악기업체가 중국 제품에다가 자기 회사 상호를 붙여 파는 건 우리 악기 판매업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바이올린이나 기타도 몇 년 전 에는 색상이나 질이 조잡했다. 그러나 이젠 모든 제품이 세계에 나가도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다. 일본이나, 우리나라, 아세안 어느 제품보다도 월등 하다.

피아노는 더 하다. 피아노설계는 독일, 일본, 우리나라 사람만 할 줄 알고 있었는데 이미 우리나라 사람의 지도로 중국에서 독자 적인 피아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어보니 30년 가깝게 조율했던 내가 놀랄 정도로 좋은 음색이 난다.

이젠 현지생산 담당 자문으로 물러난 예전 우리회사이사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기술을 절대 중국인에게 가르쳐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단다.

그래서 조선족 중에 머리 좋은 몇 몇을 선발해 가르쳤는데, 이들은 조금 일하다 힘드니까 돈 쉽게 버는 한국인 상대 술집 웨이터로 갔다고 한다.

다시 조선족을 구했더니 이들은 오랜 기술습득 과정을 못 견디고 전직했다고 한다. 어쩔 수없이 당시 그 밑에서 일하는 한족 청년을 가르쳤는데 10년 가깝게 일하며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비록 이민족 이지만 자기를 진짜 부모같이 생각하며 스승 대접을 해 주더라는 것 이었다.

그 정신에 반해 모든 기술을 전수해 주고 이젠 현역에서 물러났고, 그 중국인 청
김원용 시민기자(011-401-3744) 공주삼익악기 대표
년은 이젠 중년의 나이로 현지 공장의 공장장으로 모든 생산을 지휘한다고 한다. 그분 이야기에 우리의 민족성을 보는 것 같아 뼈에 사무친다.

그리고 같은 민족이라 쉬는 날 집에 초청해서 다과를 베풀어 주고, 잘 대해주니까 자기가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같이 행동하더란다.

게다가 집에 있던 좋은 물건들을 훔쳐가고, 중국 현지인들과 중간에서 사기 쳐서 분란을 야기 시키더란다.

그는 “왜 우리 조상이 그 많은 땅을 뺏기고 중국인에게 쫓겨나서 좁은 반도에서 머리 터지게 싸우는 이유를 알겠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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