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의 잼 있는 중국이야기-28

 

"빠오칭티엔". 포청천의 중국어다. 한때 오래전 한국에서도 인기절정이었던 이 연속극은 원래 타이완의 TV의 인기 물이었다. 빠오칭티엔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서가 우리들 마음속에도 깔려있다.

그러나 실은 빠오칭티엔 같은 사람이 없는 사회가 정말 바람직한 사회이다. 사실 빠오칭티엔 같은 사람이 인기를 얻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다.

빠오칭티엔은 중국대륙에서는 주로 경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그의 본명인 '빠오정' 또는 '빠오공'으로 불린다.

그는 송나라 때 사람으로 안훼이 지역 출신이다. 안훼이는 중국 남중부에 위치해 있다. 역대로 중국에서는 빈한한 지역으로 꽂히지만 문인을 많이 배출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앞뒤가 깨끗하다. 맺고 끊는 것이 비교적 분명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자존심도 세고. 남자들의 경우 사나이다운 모습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빠오칭티엔 같은 전설의 인물을 배출했는지도 모른다. 빠오칭티엔에 대한 기록은 송대의 역사서인 宋史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도 강직해서 그가 조정에 들면 환관들은 물론이고 황실 귀족들도 두려워 했다한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河?'이라고 불렀다.

황하의 누런 물이 맑아지면 얼마나 맑아질까? 탐관오리들의 더러움이 깨끗해지겠는가 하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었다. 강직한 성품과 비타협을 상징하는 검은색 얼굴. 이마에는 낯선 초승달이 있다.

이 이마는 ‘??’이라고 하는데 생각의 문이라는 의미다. 생각의 문 앞에 초승달이 돋아 있다. ‘月牙’라고 불리는 초승달은 어두운 밤에도 돋아나는 정기로 음기를 끊어버릴 수 있음을 상징한다.

타이완과 중국은 아직도 빠오칭티엔의 이마의 초승달이 어느 쪽으로 구부러진 것이 맞느냐며 논쟁을 하고 있다.

즉 타이완은 초승달의 꼬리를 왼쪽으로, 중국은 오른쪽으로 구부렸다. 두 나라 경극의 얼굴그림 전문가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화장을 고치려 했다.

'리엔푸'로 불리는 이 얼굴그림은 기본적인 것만 해도 272개나 된다. 오랜 논쟁 끝에 일단은 왼쪽으로 구부리는 것이 정설이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좌우지간 현재 중국은 비아냥거릴 빠오칭티엔마저 아쉬운 실정이다.

하층사람들 거리의 농민공이나 걸인들. 낮은 곳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인생철학을 듣곤 했던 적이 있다. 중국을 때론 사랑하고 때론 너무나 미운 감정이 같이 들 때가 있다.

미워하는 것은 곳곳에 널려있는 인간성의 포기다. 우리도 6.25전후에 저랬으려니 하고 위안해 보지만, 그런 모습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머리를 산발한 채 두꺼운 오버코트를 입고 중얼거리며 걷는 모습 들이나,시신처럼 누워 있는 농민공들을 보노라면 그냥 인간이 미워지곤 한다.

중국은 이렇게 인간을 극단에서 극단으로 몰고 다닌다.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사육장이다.

중국의 많은 지식층은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순진한 이상주의와 눈앞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적 부패에 분노하기 때문이다.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은 간단하다.

'中?向何處去' 번역을 하자면 '중국은 어디로 가야하나'이다. '중국은 어디로 가야하나'의 문제를 두고 중국인들은 백년간을 고민했다. 물론 지금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서방의 민주주의가 좋지만, 그러나 그것이 중국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현재 진퇴양난에 빠진 이유는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병폐를 근거로 일어난 공산주의, 그러나 이제는 다시 자본주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됐다.

공평의 공산주의와 우선 잘 살고보자는 자본주의의 모순은 시진핑을 비롯한 지도자 계층은 물론 거리의 택시 기사의 마음속 깊은 곳에까지 점점 뿌리를 내리며 싹을 틔우고 있다.

이름하여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포장해보지만 국민들을 다독거릴 수 있는 것은 현찰이지 구호가 아니다.

중국에 만연한 자본주의 병폐가 마침내 중국을 혼란에 빠뜨려버릴 것 이라는 비분강개나, 서방의 부패한 생활 흉내 내기가 마침내 제2의 천안문 사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공산당 내부에서의 우려가 많은 지식인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일년 소득이 아직도 몇 백 만원도 안 되는 농민층과 식사 한 끼에 몇 백 만원 하는 사업가들이 공존하고 있다. 서민들은 아직도 '?桶'이라는 요강을 끼고 사는가 하면 수시로 '쌍나위'를 즐기는 졸부들도 즐비하다.

거리의 서민들은 뻬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어마어마한 땅을 점유하고 있는 최고 실력자들의 아들들의 이름 이른바'太子?'의 별명들을 방귀 뀌듯 뱉어낸다.

'당의 기본노선은 백년 불변이다'를 외치는 공산당의 시퍼런 서슬과 '백년 째 헤매고 있는'지식인들의 갈등은 이래서 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은 사기꾼'이라고 공공연히 대놓고 푸념하는 하층민들도 이제 많아졌다.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정보는 의외로 많다. 우리나라 택시 기사들처럼, 유비통신은 서민을 투사로 만들곤 한다. 역사의 교훈이다.

중국의 성씨가 자본주의의 '자'씨인지 사회주의의'사'씨인지 공산당은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아직은 모호한 답변뿐이다. 하지만 행동은 분명한거 같다.

돈 빌릴 땐 '자'씨고 돈 갚을 땐'사'씨다. 월급날은 '자'씨고 회의할 땐'사'씨다. 외국인에겐 '자'씨고 중국인에겐 '사'씨다.

혼자 먹을 땐'자'씨고 여럿에게 나눌 때는'사'씨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부패척결의 정의와 '돈'에 대한 문화적 면죄부가 동시에 공존하는 곳, 현재로서는 족보가 시원할 수 없게 생겼다.

명판관 빠오칭티엔에게 명확한 판결을 물을 만한 사건이다. "대인의 판결을 어떨까? "빠오칭티엔도 '징탕무'를 집어 던질 것 같다. "아이고 어지럽다. '루안(?)'씨로 판결을 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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